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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살아남기

뉴욕을 떠나기로 했다. 뉴욕을 떠나기로 해서, 뉴욕에 대해 무언가 하나 남기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오늘, 정확히 뉴욕에 온 지 1년이 된다. 아득한 시간들이 반짝하고 지금 막 별이 되어 여기 도착한다.

여기. 노트북 앞에 혼자 앉아 있는 나는, 알 수 없는 미지의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지만,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아서 쓰기 시작한다.

물이 되는 꿈을 꿨다. 자라며 말로는 늘 예술가가 되고 싶다 해왔지만, 실은 물이 가장 되고 싶었다. 내가 있는 곳에 따라 형태도 형체도 바뀌는 물을 나는 무척 동경했다. 어릴 적 이유는 단순했다. 영원하고 싶었다. 비가 되었다 바다가 되었다 마실 물이 되었다 몸속에 수분이 되었다, 그렇게 순환하며 죽음에 대한 걱정 없이 살고 싶었다. 살아생전 만나보지 못한 할아버지의 뼈를 땅속에서 파내어 양지바른 곳으로 옮기고, 얼마 안 되어 할머니가 그 옆에 묻히신 이후. 한창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만 머리가 꽉 차 있던 시기였다. 그렇게 매일 깨어있는 동안 한 가지 생각만 하던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죽음에 대한 생각은 결국 삶에 대한 생각이라고 나는 전 영화에서도 말했었다.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사실이 소중함이란 감정을 일깨우니까.

 

멍을 많이 때리던 아이였던 나는 내가 겁쟁이라고 생각했다. 자꾸 꿈속으로 도망가는 겁쟁이. 그래서였을까 나는 물이 되는 꿈을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나의 용기의 원천이자 두려움에 맞서는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타고나길 꿈을 꾸는 사람인 것 같다. 나는 매일 꿈을 꾼다. 자나 깨나 나는 꿈을 꾼다. 그것은 나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자 세상을 긍정하는 비법이다.

현실감각이 둔한 내가 걱정되던 때도 있었다. 비밀이 너무 많아 스스로까지 속이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꿈을 꾸기로 했다. 물이 되는 꿈이 나만의 비밀이자 황금 나침반이 되었다. 길을 잃을 것 같던 때마다 나는 나침반을 꺼냈다. 그리고 꿈과 믿음과 희망을 지키는 주문을 외웠다. “물이 되어야지!” 물과 닮은 이것저것을 눈에 담으며 살기로 했다. 그중 몇 가지는 카메라에 담거나, 글자로 기록하면서. 사색은 내가 가진 본성이자 재능이었고, 나는 그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많은 곳으로 흘러가고자 했다.

지금 내 앞에는 흐르는 강물이 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이 얘기를 듣는 동안에도 그 강물은 계속 흐르고 있다. 그에겐 그래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다. 대신 때론 유연하고, 때론 강하고, 때론 자유롭고, 때론 억압되어 있고, 때론 잔인한 인간사가 음이 없는 노래만을 부르고 있을 뿐이다. 예고 없이 침범하는 윤슬에 나는 애꿎은 눈살을 찌푸리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지금껏 얼마나 많이 흘러왔는지.

 

표정의 무상함에 익숙해질 날이 과연 올까?

사유의 영혼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왔지만 어쩌면 그런 거 따위 없을지도 모르겠다. 정해진 것 없이 매 순간 바뀌는 인간이란 존재가 동시에 한자리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는 점이 이 강물과 꽤나 비슷할지도 모르겠구나! 정도의 생각으로 복잡한 머리를 비운다. 그런 점이…

아.. 그러고 보니 점이 그렇다. 점. 우리 각자가 살면서 하나씩은 찍고 갈 점 말이다. 잠깐 머물다 가는 주제에 점을 넘어 한 획을 긋겠다는 이 지극히 인간적인 욕심이.., 그게 자주 내가 물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 같긴 하지만…

그때 전화가 걸려온다. “아 글쎄 우리는 떠다니는 먼지와 다름이 없어. 근데 너 먼지가 추는 춤을 본 적이 있어?”

 

재군삼촌이 뉴욕에 왔다. 하얀 ‘털의 얼굴’을 하고. 사람의 눈을 가진 동물을 가끔 만나는데, 그는 그와 반대라고 느끼곤 한다. 좋은 의미로.

“시간과 공간이 동시에 시작되었어.”

“너는 그걸 상상할 수 있겠니?”

“이거 정말 중요한 문제야. 우린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쏟아지는 그의 방대한 과학적, 역사적 지식과 질문들.

그가 알면 탄식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또 꿈을 꿨다. 그의 눈이 내가 지금껏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커진다. 얼마나 커지냐면 그의 까만 눈이 세상을 집어삼킬 것처럼 커진다. 그가 항상 입이 닳도록 얘기하는 블랙홀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그의 눈이 팽창하면서 그 안에서 무수하게 많은 별이 쏟아져 나온다. 새하얀 빛의 점들이 까만 물 위에 떠내려간다. 까만 ‘무’의 시공간이 마구 넘실댄다. 하얀빛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세상 온갖 빛깔이 들어있다. 시간의 왜곡. 모든 곡선의 집. 그러다 ‘파란색이 왜 파란색인지 깨달을 때 우리는 죽는다' 정도의 말이 뜬금없이 떠올라 핸드폰 메모장에 적는다. 그때쯤 우리는 휘트니 미술관에 있었고 그가 말한다.

“다시 이 작품을 보러 올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만이 문제로다”

그는 내게 “BLIND FAITH”만이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맹신.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믿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 내가 잘 읽었다 한 책들에도 곧잘 그런 말들이 나오곤 했었다. 사랑. 무모함. 용기. 운명. 학살. 단절.이라는 다양한 이름표들을 달고서.

나의 BLIND FAITH는 무엇인가?

 

하나이고 전체인 존재로서의 나를 다시 상상해 본다.

역시 와닿지 않는다.

아무것도 착취하지 않는 존재, 또한 착취당하지도 않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해 보이기만 한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음을 안다. 나는 어느 날-다른 날과 조금 다르지만 여전하던 어느 날-물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문득 조금 충격적인 어떤 진리를 마주친다. 나의 운명이었고 우리 모두의 운명에 대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내가 물이 될 수 있다는 것.

우리는 죽어 물이 된다는 것.

가끔 내게 찾아오던 엄청난 허무함과 공허함의 고향. 동시에 삶의 추. 이제야 이해되는 “나비와 잠수종”.

꿈과 운명은 서로에게 등을 맞대고 그렇게 가장 먼발치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만이 진정한 문제였다. 나는 물이 되는 꿈이 내게서 달아나기를 바라는 동시에 무지개를 좇는 아이처럼 그 꿈을 좇았다.

 

수천 개의 물방울 하나하나가 내게 거는 말을 들었을 때, 육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지 않으며, 정신에서 또한 해방되는 상태에 갔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에너지다. 이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모든 종류의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는 날이 내게-비록 찰나였지만- 왔었다. 차분히 앉은 검은 돌 위에 막 열린 우산이끼 하나부터, 몇백 년 된 커다란 나무가 뻗어낸 가지의 마지막 잎새까지, 그 모든 ‘살아있음’이 서로에게 빨려 들어가고 배출되고, 순환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흘러가고 있었고,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 ‘운동’ 안에 있었다.

고요한 충격을 받았다. 모든 것이 믿을 수 없이 동등했다. 자연이 나를 품어 주었고, 내가 자연을 품어 주었다. 무엇인가 나를 잡고 끌어당겼다, 먼 기억의 저편으로…

 

엄마의 포궁 속.

아…. 이랬었구나.. 포근하고, 상냥하고, 따듯하다.

인간과 인간은 본래 이어져 있다. 이어짐은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

동시에 나는 경외감을 느낀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모든 생명이 견뎌내는 지독한 고독감과, 예측할 수 없는 인생과 불가피한 처음들. 처음 느끼는 생경함에 비가 오는 숲 속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내 얼굴에 떨어지던 빗방울과 나의 눈물이 섞여 들었다. 다시 말한다, 이어짐은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 나는 그때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았다. 태어나서 이미 수억 개의 빗방울을 목격했을 테지만, 그날 나는 빗방울과 처음 조우했다. 빗방울 하나에 들어간 세상을 처음 봤다. 그 안에 들어있는 조그만 나를 봤다. 나는 거꾸로 매달려 있었고 그렇게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비처럼. 배 속의 아기처럼. 서로를 보고 있다는 것. 그 상대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우리가 서로를 이 순간 처음 만났다는 것.

그때 나는 행복했다. 나는 진정으로 행복했다. 나의 영혼은 자유로웠고, 평온했고, 싱싱했다.

 

순간이 지나갔다. 시간이란 곧 제한이기에.

나는 나를 꿰뚫고 지나간 그 순간을 마치 시계 토끼처럼 꼭 쥐고 바쁘게 다시 발길을 옮겼다. 무엇에 그렇게 쫓기던 걸까..

돌아보면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알았고, 그 삶에 뛰어들게 할 어떤 동기이자 용기이자 충격이 필요했던 것 같다. 혹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내가 떠나보내야 할 것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어릴 적부터 좀 그런 게 있었다. 좀 드라마틱한 것에 대한 끌림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자주 아주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정신을 차려보면 그 한가운데 서 있곤 했다. 벼랑 끝에서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문이 열린다고 나는 믿는다. 물이 100도에서 끓듯, 0도에서 얼듯. 변화를 위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아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모퉁이로 몰아간다. 그런 무모함과 극단적 상황 속에서만 나는 무서워서 만치 냉철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도달한 것이 최선의 선택지냐? 그것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 어쩌면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 왔을 때, 나는 내가 분리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상한 희열을 느낀다. 나는 그 속에서 느끼는 어떠한 고독감, 괴리감, 괴로움-이밖에 대부분 말의 언어로 차마 표현 불가한 그런-감정들이 나를 잠식시키는 것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조금 변태적인가? 나라는 캐릭터를 지켜보는 어떤 초월의 존재가 되어버린 착각이 달콤하고 동시에 이런 어리석은 자신을 비웃으며 어떤 해방감을 느낀다. 불완전함이란 이름의 해방. 지독하게 내 자신이 될 때, 내 안으로 자꾸만 기어들다가 스스로 내던져진 상황 속에 방치된 나를 발견하게 될 때. 그렇게 세상이 내 손을 떠났음을 인정할 때, 그에 처참히 짓밟힐 것을 허락할 때. 그 허락이 나의 선택이라는 것. 그때 내 안의 폭풍우는 잠잠해진다. 잔잔해진 그 표면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나를 그 안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왜 여전히 물이 되고 싶나? 물은 차별하지 않는다. 물은 고집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 자신을 던질 용기가 있으므로 그렇다. 나의 늙은 친구 수옥은 어느 날 꿈을 꾸고 전화를 해왔다. 그리고 내가 뉴욕에 가야 한다고 예언했다. 뉴욕에 가면 내가 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내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회춘했다. 수옥은 전부터 곧잘 내게 그녀가 살던 뉴욕을 이야기해 주곤 했다. 뉴욕을 떠나기 직전의 어느 북유럽인 두 남자에게서 200불에 수옥이 산 빨간색 자동차. 그녀는 그 자동차를 타고, 자신이 지도로 그리기도 했던 바둑판같은 뉴욕의 도로들을 누볐다. 백남준 선생님에게 밥을 얻어먹고 이름을 불리는 순간을 맞았다. 윌리엄스버그의 허드슨강 앞의 한 아파트에 살며 맨해튼을 매일 바라봤던 그녀의 얘기들을 듣고도 내가 뉴욕에 오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다르겠지. 하지만 여전히 뉴욕은 꿈의 도시로 불리고 있었고, 꿈꾸는 게 일인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세상은 직접 겪어봐야만 이해에 가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특히 나는 몸으로 체험해야만 하는 성질을 타고났다. 나는 그렇게 가장 철저하게 인간다운 곳. 돈, 명예, 자유, 사랑의 가장 통 큰 광고주. 내가 아는 가장 개인적이고 화려하며 혼란스러운 곳, 자연과 가장 반대되는 뉴욕으로 가기로 했다.

 

뉴욕에 처음 온 순간을 기억한다. 미국에 온 첫해였고, 볼티모어에 있는 학교에서 첫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버스로 3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뉴욕을 방문했었다. 내게 뉴욕의 첫인상은 기대보다 훨씬 더 강렬했다. 멀리에 보이던 대도시의 상징, 마천루. 모서리들로만 이루어진 이상한 이 도시는 분명 자연과 가장 반대되는 곳이었고, 허공에 삐쭉 빼쭉 날카롭게 그려진 그 선들이 인정하기 싫었지만 아름다웠다.

누런색 터널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왔다.

나왔고 나온 그 순간 나는 큰 시각적 충격을 받았다. 개미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아니, 나는 완벽히 그 순간 개미가 되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던 커다란 빌딩들을 기억한다. 다가갈수록 내게서는 멀어지던 이상한 풍경들.. 이상한 나라의 물약을 먹은 앨리스처럼 나의 몸집이 마구잡이로 작아졌다. 커다란 도시 속 수많은 빌딩, 그사이에 난 여러 개의 도로, 그곳을 기어 다니는 자동차들, 그 바퀴 달린 상자들 안에 탄 사람들. 그중에 내가 있었다. 반대로 이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었고, 내 옆에 앉은 어떤 사람이 있었고, 그 위에 버스 천장이 있었고, 그 위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공중에 있었고, 멈춰있었다. 와중에 손가락을 꼬물거리고 팔을 휘적거리고, 다리를 달달 떠는 나는 개미나 마찬가지였다.

 

뉴욕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한순간도 기억한다. 이번엔 긴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 가기 전 혼자 뉴욕으로 짧은 여행을 왔을 때였다. 늘 그렇듯 열심히 걸어 다니다 브라이언트 파크에 닿았다. 살짝 녹이 슨 테이블과 살짝 치우친 의자에 앉았다. 초록색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파란색 혹은 빨간색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늘이라 시원했던 의자가 생각보다 더 불편했던 점만 뚜렷하게 기억한다. 의자의 높이도 기울어짐도 여러모로 이상했다. 그 유명한 브라이언트 파크, 뉴요커들의 쉼터인데,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근데 그래서 좋았다. 뭔가 어설퍼서, 완벽함과는 멀어서. 마치 늘 내 상상 속에서 빛나던 슈퍼스타의 인간적인 면을 알게 된 기분이랄까? 사람다움이란 말을 자꾸 쓸어 만졌다. 그러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이 참 많았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갑자기 새삼스럽고 너무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저 사람을 절대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온전히 인식했다. 세상에! 저렇게 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니! 그리고 나는 그것이 기뻤다. 이렇게 많은 사람 가운데 그 누구도 나라는 이상한 나라를, 한 우주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래서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떻게 보여주지! 기회가 뉴욕에 사는 사람 수보다 많았다. 심심할 틈이 없겠네. ‘아하, 그래서 인간은 지루함을 견뎌내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구나’.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조금 먼발치에서 잔디밭이 햇빛을 입가에 묻히고 웃고 있었다. 해맑고 찬란했던 그 초록빛이 아직도 선명하다. 부지런히 출석한 새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뉴욕을 노래했다. 새들의 목소리와 초록 잎 무성한 가지들 밑에서 나는 강한 희열을 느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희망은 달콤했고, 나의 가슴속에는 환희가 용솟음쳤다.

 

뉴욕은 첫 만남에 아주 매혹적인 향기를 뿌리는 것 같다. 첫 만남과 첫인상이 자주 그러하듯 그 향은 내게 꽤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것에 이름이 있다면 아마 ‘의미심장한 설렘’ 정도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마음에 드는 향의 향수를 뿌린 종이샘플을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곤 하는 사람이라 결국 뉴욕으로 가는 레빗홀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향기 나는 미끼 아래 반드시 죽는 고기 있다더니.. 둥둥 떠다니는 빛 잃은 눈동자들을 마주하기까지 내게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유채의 시선으로 본 뉴욕을 보고 싶다.” 얼마 전 애정하는 언니가 내게 한 말이다.

뉴욕에 와서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해 왔다. 전부터 기록용으로 만들어 둔 인스타그램 계정에 내가 만나 온 뉴욕을 영상과 글로 채집해 두었다. #y의뉴욕. 거기에는 나를 통과한 뉴욕의 조각들이 모여있다. 뉴욕이 좋았던 날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내가 떠나는 이유가 그 안에 단편적으로 담겨있다. 뉴욕과의 작별을 앞두고 오랜만에 정주행을 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또 한 번 상기한다. 기록은 그렇게 중요하다. 나의 과거가 나의 길잡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며 물과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과거도 미래도 현재라는 것.

 

자연, 예술, 여행이 일상이 되는 삶. 뉴욕에는 물론 그 세 가지가 모두 있긴 하다. 뉴욕 공원들의 푸르름을 나는 매우 사랑한다. 뉴욕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표정은 나의 피를 끓게 한다. 매일 새로이 발견하는 뉴욕의 모퉁이들은 내가 인간임을, 그래서 다양한 자극을 경험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한다. 하지만 뉴욕에서는 그 모든 것에 상당한 대가를 지급해야만 한다. 사치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사치가 되는 순간, 웃음은 앉을자리를 잃는다. 뉴욕은 더 이상 내가 환상하던 바스키아의, 혹은 <저스트 키즈> 속의 뉴욕이 아니었다. 나는 이곳에 살며 예술에 대한 갈증을 너무 많이 느꼈다. 생존 자체에 드는 힘이 필요이상 드는 곳에서 소소한 행복의 자리를, 예술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녔다. 위협 없는 산책, 제철 과일, 예술가 친구, 그리고 무엇보다 고요함은, 내게 예술을 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소음과 쓰레기와 분노와 굶주림이 자꾸 목에 걸려 왔다. 삼키는 것조차 서서히 지쳐갔다. 얼굴에 뉴욕이 울긋불긋 올라왔다. 알록달록한 옷과 발랄하게 올려 묶은 머리로도, 분칠로도 가려지지 않던 어떤 울분... 그러다 어느 날에 지하철 창 너머로 어떤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무례를 무릅쓰고 빤히 쳐다보았다. 그도 그랬다. 사람의 눈을 오래 마주치는 데에 자주 간지럼을 느껴 평소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을 행동이었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나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처음 보는 그 사람이 혐오스러웠다. 그리고 그건 내게 충격을 주었다. 나는 뉴욕을 싫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끝판왕. 착취가 만연하며 그로부터 부를 쌓아 올리는 사회 구조의 본거지인 이 도시를 내가 떠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시간문제였다. 기회의 땅이란 말은 결국 경쟁의 땅이란 말이다. 하지만 나는 경쟁에 관심이 지지리도 없는 사람이다. 와중에 하필 나는 물질적 욕망과 향유로부터 취약하기도 하다.

이 타이밍에 나는 고백하겠다. 나는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가능한 한 많이, 자주, 멍을 때리고 싶고, 걷고 싶고, 물을 가만히 바라보며 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일을 최소화하면서 생존할 방법을 고민한다. 적게 벌고 적게 쓰고 가능한 한 많이 존재하는 삶을 이곳에서도 찾아보기로 한다.

뉴욕에서 돈을 적게 벌면서도 살아남는 방법은 다양하게 있다. 거실에 간이침대를 두고 투베드아파트에 서너 명이 살면서 입이 벌어지는 렌트비를 조금이라도 절약하기도 하고, 여러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도 많다. 조금이라도 더 싼 식자재를 사러 한두 시간이나 떨어진 이민자 도심지구에 간다. 예를 들면, 차이나타운이나 잭슨하이츠. 트레이더 조도 애용한다. 파머스마켓에 나가는 방법도 있다. 뉴욕에서는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장이 잘 선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티켓게이트를 몰래 넘어가거나, 가성비를 생각해서 중고 자전거를 사기도 한다. 길에서 버려진 가구를 주워 쓰고, 먼지 더미 속 헌 옷을 사 입는다. 거기에 나의 개인적인 팁을 주자면, 집 주변에 커뮤니티가든을 찾으면 아주 좋다.

 

내가 일 년 동안 살았던 부쉬윅 집에서 7분 거리에는 동네텃밭이 있었다. 그곳은 갑갑한 뉴욕에서 어쩌면 성당에서의 45분을 빼놓고 유일하게 내가 숨 쉴 수 있는 곳이었다. 아마 그곳이 없었다면 나는 일 년이나 버틸 수도 없었을 것이다. 동네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매주 토요일 아침 10시에 모여서 흙을 만졌다. 헝클어진 머리, 젖은 무릎, 까매진 손톱을 입은 내가 나는 좋았다. 그런 면에서 밭일은 예술을 하는 것과 아주 비슷했다. 그래서일까, 그곳엔 예술가들이 많았다. 자연주의적인 미래만이 살 길이라 예언하는 안무가, 아주 이색적인 티파티를 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춤을 추는 컴퓨터 엔지니어, 그리고 나무에 붙은 파리가 되고 싶다던 음악가까지. 어릴 적부터 간간이 농사를 지으며 자랐지만, 나만의 작은 텃밭을 갖게 된 건 처음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많은 작물을 재배했다. 토마토, 오이, 가지, 고추, 오크라, 당근, 배추, 상추, 열무, 등등. 텃밭의 한중간에는 복숭아나무도 한 그루 있었는데, 그걸로 잼도 만들어 먹고, 얼려서 더위를 나기도 했다. 텃밭은 나와 이웃들을 먹여 살렸다. 나를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했다. 내가 일한 만큼 딱 그만큼 내게 주는 자연은 신비로웠고, 그런 단순하고 정직한 삶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뉴욕의 겨울이 왔다.

 

뉴욕의 신고식은 겨울에 일어난다. 매서운 바람이 여기저기에 생채기를 낸다. 사라진 태양, 얼어버린 땅, 땅이 꺼지는 한숨에 무게를 더하는 옷가지들 그리고 불행한 노숙자들. 혹독함이란 단어가 신발 밑창에 껌처럼 붙는다. 전철역에서는 매일 누군가 죽었고, 가끔은 그게 내가 될 거라는 말을 내게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집에 있어도 안전하다고 느끼지를 못하게 되었다. 나는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에너지를 가만히 있어도 빼앗겼다. 없던 계절성 우울증이란 게 생겼다. 처음에는 그냥 창문 틈새를 테이프로 막아도 비집고 들어오던 추위 때문에, 아니면 캄캄한 밤, 내 발밑에 들리던 쥐의 발톱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하여서 그런가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살지?

 

자주 앞이 깜깜해졌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이명이 들렸다. 위잉- 위잉- 귀에 진동이 울렸다.

너무 힘들 때는 명상하거나 나를 위해 요리를 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이번 겨울을 겨우 버틴다고 해도, 내년은? 내후년은?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떠나기로 했다. 유학생으로서의 특권을 미련 없이 빼 들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느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가는 표를 끊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슬퍼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런 내게 버텨야 할 이유를 준 사건이 생겼다. 예고 없이 쿵-하고 떨어지던 심장과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들을 꾸었다. 그런 나를 나만 안다는 것이 한탄스럽다고 느끼게 되었을 때, 나는 뉴욕에 남기로 했다. 처음 뉴욕에 오고 싶다고 느꼈던 브라이언트파크에서의 날과는 정반대로, 나는 간절하게 타인과 이어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정말 알수록 마법 같다. 사랑은 사람을 창작하게 한다. 뉴욕을 버텨내야 할 이유가 하룻밤만에 밤새 밤하늘을 수놓을 만큼 생겨났다. 뉴욕의 짭짤한 피클처럼 나는 절여졌다. 그렇게 쓸쓸함도 낭만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잊고 있던 나의 꿈을 다시 기억해 냈다. 물이 되어야지. 저 사람에게 그렇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지. 내가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사랑은 내게 한 번 더 뉴욕에 속아 볼 용기를 주었다. 그런 엄청난 힘이 사랑에는 있었다. 그리고 진정한 힘이란 정제되지 않고 주변으로 퍼져나감을 배웠다. 나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나는 예술을 해야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나는 내가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게 된 뉴욕의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에, 남겨주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사랑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길을 가만히 걷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코끝이 시리면 주먹을 꽉 쥐었다. 노란 소파에 얼굴을 묻고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두 팔을 벌렸다. 모든 것에 자신을 던질 용기가 있는 물과 같이 되고 싶어서 이곳에 왔었으니까. 씩씩하게 눈물을 닦고 무너진 만큼 더 튼튼하게 심장을 다시 지었다. 다음에는 덜 오만하고 조금 더 성숙한 집이 될 거라 다짐하며.

 

나는 사랑이 물과 닮았음을 배웠다. 사랑에게도 차별이란 개념이 없었다. 사랑을 통해 주는 것이 받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사랑을 받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한번 받은 사랑은, 그리고 주었던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힘을 내어 뉴욕의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 고마운 마음으로. 위대한 마음으로.

 

밤낮으로 일을 하며 살아보려고 했다. 나를 살게 할 뉴욕의 풍경들을 만나려면 일단 살아야 하기에. 비 오는 뉴욕의 거리를 물들이는 빨간 네온사인들. J 노선의 지’상’철 역마다 있는 스테인글라스가 해 질 녘에 물들이던 정거장 바닥. 지’하’철이 들어올 때 기둥 사이로 비치는 앞 라이트 불빛과 흩날리는 여러 색의 머리카락들. 깨진 벽 틈에 찌든 아름다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춤을 추는 행위예술가. 자전거를 타고 프로스펙트 파크로 들어서는 길의 첫 나무 그늘. 길거리 음악가들. 달리는 노인들. 벽돌 건물들과 옥상의 물탱크들. 휘트니 미술관에서 보는 경치. 그리고 매일 다른 강물. 내 마음을 웅장하게 하는 장면들이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남았기에 일어나는 일들을 맞이하였다. 사람과의 관계란 깊어질수록 무서운 것이지만 손을 잡고 함께 내려간다는 점에서 분명 용기만 내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장담하는데 그 특수한 잠수는 아주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파도와도 같은 대화들 그 밑에서 발견하는 짙은 고요함. 말없이 서로의 눈빛만으로 대화하는 시간. 유대감은 거기서 태어난다.

 

내가 다시 뉴욕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한 정확한 날짜가 나의 핸드폰 메모장에 있다. 2023년 3월 8일 오후 1시 34분. 정재일의 Listen을 들으며.라고 쓰여있다. 피아노 소리에서 없는 가사가 들렸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가차 없이 떠나라.

끔찍함을 견뎌내는 유일한 방법은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 창작이란 그렇다. 예술이 나를 치유한다. 내가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실 점점 내게 그리 큰 상관이 없어지고 있다. 그저 죽을 때까지 만들고 싶은 걸 만들 수만 있기를. 그리고 그러기 위해 나는 선택을 했다. 나는 뉴욕을 떠나기로 함으로써 그렇게 원하던 뉴욕에 대한 작업을 하나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엔 헤어져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미련이란 덩어리는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진득하게 스며들어 머리를 밀어야만 마주할 수 있다. 큰 용기와 수고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다. 포기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그래서 나의 나약함을 까발리는 것이었다. 꽤 구질구질하게 뉴욕에 이별을 고하는 거다. 하지만 꽃은 지고 핀다.

 

나는 “마침내” 뉴욕을 떠났다. 그리고 이제야 드러난 어떠한 사실이 있다. 떠나야만 보이는 어떤 사실이.

나는 창조할 수 없는 것이 괴로워 뉴욕을 떠났다. 하지만 이제 알았다. 뉴욕은 사는 것 자체가 창조적 행위가 되는 곳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는 사람을 회춘하게 만든다는 것 또한. 그래서 나에게 뉴욕에 가야 한다던 수옥 씨의 주름과 기미가 옅어졌던 것임을.

뉴욕에서 살아가는, 아니 살아남은 방법들을 기록하기 위해 나는 여기 왔다. 4달러 샌드위치를 가지고 공원에서 거리 음악을 들으며 남부럽지 않은 점심을 먹는 일, 어느 신인작가의 작업을 보고 글을 쓰는 일, 웅장한 마음으로 사자가 있는 도서관에 가는 것, 한 블록 미리 틀어 새로운 가게를 구경하며 걷는 혹은 거대한 성당에 들어가 관광객 사이에서 촛불을 켜는 일 같은 것. 뉴욕은 그리고 정말 재즈 그 자체인 것이다. 제멋대로로서 어우러지는. 즉흥적이고, 자유롭고, 불협화음마저 사랑스러운…

뉴욕에 남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내가 뉴욕에 그 누구보다 어울렸다는 얘기로 작별 인사를 했다.

 

끝이자 시작이 되는 어느 순간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내가 당신에게 닿게 되는 순간. 삶의 실마리가 풀리는 순간. 문이 열리는 순간. 어떤 폭발 혹은 이탈 혹은 합체를 기대하며 마음이 부푼다. 미지의 당신을 만나러 가는 나는 또 동시에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은 시시한 기분도 느끼곤 한다. 상상하는 음식의 향을 혀끝이 기억하는 것에 신비함을 느끼는 날들과 가족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혀끝에 뒹구는 선 날들을 경험하며 나는 요상한 이 삶을 조금 더 헤매어 보기로 한다.

 

어느새 흐르듯이 여기까지 썼다. 조금은 물을 닮아졌나? 아무렴 어때, 나의 마음이 그로 인해 잔잔해졌으니 그걸로 충분하지. 그나저나 앞으로 나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나는 여전히 물이 되는 꿈을 꾼다. 나는 여전히 노트북 앞에 혼자 앉아 있고 여전히 내 앞에는 흐르는 강물이 있다. 계속 흐르고 있던 강물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이. 저기 물을 타고 뒤로 가는 흑조처럼. 그리고 어느새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것처럼. 그저 흘러간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잠시 잊고 있던 나의 황금 나침판을 꺼내본다.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이 나침판을 연 적이 없다. 열리기는 하는 건지도, 열면 무언가가 있긴 한 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라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나침판이 여기에 이렇게 있다는 것. 내가 여기에 이렇게 있는 것처럼.

~2023년의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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